1. 서론: 전류 전쟁의 시작
19세기 후반,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기술 경쟁 중 하나가 벌어졌다. 바로 '전류 전쟁(Current War)' 이라 불리는 이 싸움에서 두 거장이 맞섰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그리고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이 전쟁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전력 인프라를 좌우할 미래의 표준을 결정하는 싸움이었으며, 동시에 천재 발명가들의 신념과 자존심이 충돌한 사건이었다. 과연 이들은 왜 적이 되었을까? 그리고 승자는 누구였을까?

2. 전류 전쟁의 배경: 직류(DC)와 교류(AC)의 차이
전류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직류(Direct Current, DC)와 교류(Alternating Current, AC)의 차이를 먼저 알아야 한다.
- 직류(DC): 전자의 흐름이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흐른다.
- 교류(AC): 전자가 주기적으로 방향을 바꿔 흐른다.
에디슨은 직류 시스템을, 테슬라는 교류 시스템을 지지했다. 당시 에디슨은 이미 직류 기반의 전력망을 구축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직류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 장거리 송전이 어렵다.
- 전압 변환이 비효율적이다.
- 설치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테슬라가 주장한 교류 시스템은 고전압 송전이 가능했고, 변압기를 사용하여 손쉽게 전압을 조절할 수 있었다. 즉, 보다 저렴하고 효율적인 전력망 구축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에디슨과 테슬라는 기술적, 경제적,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3. 에디슨의 공격: 교류를 악마화하다
에디슨은 이미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자신의 직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그중 가장 악명 높은 전략이 바로 **교류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공포 캠페인'**이었다.
3.1. 감전 실험과 공개 처형
에디슨은 교류의 위험성을 부각하기 위해 동물을 대상으로 감전 실험을 진행했다. 개, 고양이, 말, 심지어 코끼리까지도 교류 전류에 노출시켜 죽게 만들었다. 이런 실험의 목적은 대중들에게 "교류는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뉴욕 주 교도소와 협력하여 세계 최초의 전기의자(전기 처형 기구)를 개발하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사형 집행 시 교류 전류를 사용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교류는 '사형 집행을 위한 잔혹한 전력'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3.2. 테슬라에 대한 음해 공작
에디슨은 테슬라가 개발한 교류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위해 언론을 이용했다. "교류 전기는 너무 위험하다", "불안정하고 폭발 위험이 크다" 등의 루머를 퍼뜨렸다. 심지어 "테슬라는 위험한 과학자" 라는 낙인을 찍으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에도 불구하고, 교류 시스템의 장점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4.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의 반격
테슬라는 자신의 교류 시스템이 직류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를 지원한 사람이 바로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였다.
웨스팅하우스는 전력 산업에서 중요한 사업가였으며,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이 미래 전력 공급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테슬라와 손을 잡고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4.1. 나이아가라 폭포 프로젝트
교류 시스템이 실용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는 나이아가라 폭포 수력 발전소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 1895년,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발전소가 가동되었고, 뉴욕시까지 전력을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 이 사건은 교류의 승리를 결정짓는 역사적 순간이 되었다.
4.2.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는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의 전력 공급을 담당하면서, 교류의 우수성을 대중에게 직접 증명하는 기회를 잡았다.
- 교류 전력을 이용해 박람회 전체를 환하게 밝혔고, 수많은 방문객들에게 인상적인 경험을 제공했다.
- 이로 인해 미국 전력 산업이 직류에서 교류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다.
5. 전류 전쟁의 끝과 테슬라의 운명
5.1. 교류의 승리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이 점점 시장을 장악하면서, 결국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은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
1890년대 후반, 미국 전력망은 교류 시스템으로 표준화되었고, 전류 전쟁의 최종 승자는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가 되었다.
5.2. 테슬라의 몰락
하지만 테슬라 개인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 웨스팅하우스가 재정난에 빠지면서 테슬라는 자신의 특허를 포기해야 했다.
- 이후 무선 전력 전송 연구에 몰두했으나, 자금 부족과 투자자의 외면으로 인해 실험은 실패했다.
- 결국 그는 생애 말년을 빈곤 속에서 외롭게 보냈다.

6. 테슬라와 에디슨, 누가 진정한 승자인가?
전류 전쟁에서 교류가 승리했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면 에디슨은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었고, 테슬라는 역사 속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테슬라의 업적이 재조명되었고, 현재 우리는 그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전력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에디슨은 탁월한 사업가였고, 테슬라는 천재적인 과학자였다.
궁극적으로 이들의 경쟁이 현대 전력 산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인류에게 더 나은 기술을 선사했다.
이제, 우리는 전기를 사용할 때마다 이 두 거장의 치열한 싸움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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